인터뷰> “신약은 시간 싸움…세계 3등 안에 못 들면 생존 못해” 김용주(화학74)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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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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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화학74)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 회장  


창립 20주년…대표 신약 개발사로 “시총 20조 회사 만들고 싶다”  


“신약 개발은 시간과의 전쟁입니다. 품질은 기본이고, 세계에서 세 번째 안에 들지 못하면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김용주(화학74)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이하 리가켐) 회장은 신약 개발의 세계를 올림픽보다 더 냉정한 승부라고 했다. 
1등 제품의 시장을 100으로 보면 두 번째 제품은 절반, 세 번째는 10% 수준으로 줄고 네 번째부터는 설 자리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체급 구별도 없다. 작은 바이오 벤처라고 봐주는 일도 없다.
 
그는 신약 개발을 ‘장애물 마라톤’에도 비유했다. 보통 경기는 넘어져도 일어나 이어 달릴 수 있지만 신약은 임상 도중 안전성이나 유효성의 벽을 
넘지 못하면 출발점으로 돌아가 새 후보물질을 찾아야 한다. 이 냉혹한 경주를 김 회장은 28세 때 시작했다. LG화학에서 처음 의약품 연구를 
맡은 뒤 44년 동안 연구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인터뷰는 8월 4일 대전 리가켐 본사 회장 집무실에서 김광덕(정치82) 편집인의 대담으로 진행됐다. 회사 로비에는 세계 지도와 함께 ‘오직 
신약만이 살 길이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2006년 창업 이후 한길만 걸어온 김 회장의 신념을 압축한 말이다. 사명 가운데 ‘리가(Liga)’는 
독일 축구 ‘분데스리가’의 리가와 같은 말이다. 연결과 연대, 네트워크라는 뜻을 담아 화학을 뜻하는 ‘켐(Chem)’과 결합했다. 리가켐을 국내 
최고 수준의 신약 개발사로 일궈낸 김 동문의 꿈과 땀에 대해 들었다.
 
-고교 때부터 화학을 좋아했다고요.
“화학을 통해 세상에 없던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우리 74학번은 약대·자연대·공대를 합쳐 1100여 명을 뽑은 계열별 모집 
세대였어요. 1학년을 마친 뒤 전공을 골랐는데 저는 망설이지 않고 화학과를 택했습니다. 당시엔 화학과를 나와도 취업할 곳이 많지 않았지만, 
좋아했기 때문에 간 거죠.”
 
그의 대학 시절은 유신 체제와 겹쳤다. 입학 직후 민청학련 사건으로 학교가 문을 닫았고 시위와 휴교가 이어졌다. “4년 동안 실제 학교에 다닌 
기간이 2년 반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공부보다 시위와 서클 활동의 기억이 더 많지만, 그 시절 마음속에 한 가지 원칙이 생겼다. 연구자가 
되더라도 대학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 현장에서 일하겠다는 결심이었다.
 
1학년 때는 태릉 교양과정부를 중심으로 물리는 공대, 수학은 사대를 오가며 수업을 들었다. 1975년 관악캠퍼스로 옮겨온 세대이기도 하다. 
어수선한 시대였지만 여러 현장을 몸으로 겪은 경험은 훗날 “연구는 논문에 머물지 않고 제품이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서울대 화학과 졸업 뒤 KAIST에서 유기화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처음엔 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을 듣고 KAIST에 갔습니다. 그런데 가 보니 화학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석·박사 과정 5년 동안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원 때 대덕연구단지를 견학했는데 학교 실험실과 비교하면 천국처럼 보였어요. 현장에서 연구하겠다는 
생각이 더 굳어졌죠. 1982년 9월 15일 LG화학 연구소 면접을 봤고, 1983년 1월 1일 입사했습니다.”
 
그는 LG에서 선임·책임연구원과 연구위원을 거쳐 신약연구소장을 맡았다. 1990년대 말에는 미국 샌디에이고 연구소에서 3년간 일하며 바이오벤처 
생태계를 체험했다. 작은 회사가 후보물질을 발굴하면 대형 제약사가 사들여 임상과 판매를 이어 가고, 그 자금이 다시 혁신기업으로 흐르는 선순환이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 경험이 창업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 
 
-23년간 몸담은 LG를 떠나 2006년 창업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신약 연구는 10년, 20년을 이어 가야 하는데 경영자가 바뀌면 연구 방향도 바뀌곤 했습니다. 항생제를 20년 연구한 사람에게 갑자기 다른 분야를 
하라고 하면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저는 동료들과 하던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어요. LG에서 신약 개발의 ABC를 모두 배웠으니 이제 우리 
방식으로 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창업 당시 황우석 사태 여파로 바이오 투자 환경은 얼어붙어 있었지만, 오히려 어려울 때 시작한 것이 
버티는 힘을 길러줬습니다.”
 
-리가켐바이오 회사를 소개해 주신다면. 
“항암제와 항생제 등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입니다. 지금 중심은 항체약물접합체, ADC(Antibody Drug Conjugate) 입니다. 쉽게 말하면 미사일과 
같아요. 항체가 암세포라는 표적을 찾아가고, 링커가 항체에 실은 강력한 약물을 목표 지점에서 풀어 암세포를 죽이는 것입니다. 항체는 생물학의 
영역이지만 링커와 약물을 설계하고 연결하는 데는 높은 화학 실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강점을 가질 수 있다고 본 이유입니다.”
 
리가켐이 공개해 온 파이프라인에는 HER2 표적 ADC ‘LCB14’와 TROP2 표적 ADC ‘LCB84’ 등이 있다. LCB14는 중국 포순제약에, LCB84는 
글로벌 제약사 얀센에 기술이전됐다. HER2 표적 ADC는 유방암을 비롯한 HER2 양성 고형암, TROP2 표적 ADC는 비소세포폐암·유방암·대장암 등 
여러 고형암으로 개발 가능성이 열려 있다. 다만 신약 후보물질은 임상시험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해야 하므로 현 단계에서 특정 암에 ‘효과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리가켐은 자체 개발과 기술이전 파트너사를 통해 적용 암종을 넓혀 가고 있다.
 
-신약 개발은 어디까지 진전됐나요.
“자체 개발과 기술이전한 것을 합쳐 ADC 8개가 임상에 들어가 있습니다. 가장 앞선 것은 약 10년 전 중국 포순제약에 기술이전한 HER2 표적 
ADC입니다. 당시 우리는 임상 비용이 부족해 중국 시장 권리를 주는 대신 모든 비임상·임상 데이터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했습니다. 중국 임상 
3상을 마쳐 출시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항생제 분야에서는 창업 때부터 20년간 개발한 결핵 치료제가 임상 2상을 마쳤고 3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직원 대부분이 연구개발 인력이고 해마다 대규모 R&D 자금을 투입합니다. 속도전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신약은 시간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표적을 놓고 세계 여러 기업이 동시에 달립니다.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세 번째 안에 들지 못하면 기술이전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돈으로 시간을 사자’며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 왔습니다. 하지만 물량만으로는 중국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제품 개발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ADC 플랫폼의 핵심 기술을 계속 고도화해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를 만들어야 합니다.”
 
리가켐은 전체 임직원의 약 85%를 연구개발 인력으로 두고 있다. 김 회장이 속도만큼 거듭 강조한 것은 기술의 질이다. 남보다 빨리 임상에 
들어가는 데 그치지 않고 항체와 약물을 잇는 링커, 암세포 안에서 약물을 정확히 방출하는 기전 등을 끊임없이 개선해야 중국의 대규모 물량 
공세를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최근 중국 바이오 기업의 급부상을 ‘중국발 쓰나미’라고 표현했다. 그의 추산으로는 세계에서 임상 개발 중인 ADC 후보물질의 절반 
이상을 중국 기업들이 차지한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이 부분적으로 앞선 분야가 있었지만 중국 정부와 지방정부의 장기 투자, 해외 인재의 귀환, 
빠른 임상 승인에 힘입어 판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리가켐이 2024년 오리온그룹 계열사로 편입됐고, 회장님은 올해 대표에서 물러나 미래 기술 발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결국 후기 임상까지 가려면 큰돈이 필요합니다. ADC 하나를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1상까지 끌고 가는 데도 1000억원 가량, 3상에는 조 단위 
자금이 들 수 있습니다. 초기 단계에서 계속 기술만 팔아서는 글로벌 제품을 우리 손으로 내놓기 어렵습니다. 오리온과 협의할 때 연구에 간섭하지 
말 것, 회사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것, 경영진과 연구의 연속성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제가 대표에서 물러난 것도 일상 경영은 후임에게 
맡기고 차세대 기술과 초격차 전략을 더 깊이 고민하기 위해서입니다.”
 
리가켐은 국민성장펀드의 첫 바이오 직접투자 기업으로 선정돼 5000억원을 조달했다. 산업은행을 통한 정책자금 2500억원과 대주주 오리온 
1250억원, 금융기관·벤처캐피털 1250억원 등이 다. 김 회장은 “기술이전에서 멈추지 않고 일부 파이프라인을 후기 임상과 출시까지 가져가기 
위한 도전 자금”이라고 했다.
 
-‘비전 2030’의 핵심은 무엇인지요.
“2030년까지 신약 두세 개를 우리 손으로 출시하고, 7~8개를 임상 2·3상 단계까지 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앞으로 연간 2조원 
가량을 벌어 2조원을 R&D에 다시 투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가총액 20조원도 그 결과로 따라오는 목표입니다. 선언만 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필요한 돈과 인력, 개발 일정을 거꾸로 계산해 실행해야 합니다.”
 
-K바이오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바이오는 한 정권의 산업정책을 넘어 국가 안보와 공공보건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코로나19 때 백신과 치료제를 다른 나라에 의존하면 결정적 
순간에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봤잖아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우선순위가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장기 전략을 이끌 컨트롤타워가 필요하고, 
제한된 재원도 나눠 먹기보다 경쟁력 있는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규제기관에도 전문성이 축적돼야 하고요. 대학과 출연 연구소는 
원천기술과 인재를 키우고, 기업은 이를 제품으로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검증받는 역할 분담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걷기와 등산을 좋아합니다. 점심 뒤 회사 주변을 한 시간쯤 걷고, 시간이 나면 산에 갑니다. 제가 대전 토박이인데, 대전에 산이 참 많아요. 
두 시간 걸으면 소설 두 편을 쓸 만큼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주말에 생각을 정리해 월요일에 쏟아내니 연구원들은 싫어할지도 모르죠.(웃음)”
 
-모교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젊을 때부터 ‘나는 이것만 하겠다’며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해보지도 않고 무엇을 잘하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다가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실패하면 돌아오면 됩니다. 미국의 젊은 연구자들은 진로를 훨씬 유연하게 생각하는데 우리 젊은이들은 오히려 보수적인 경우가 
많아요. 큰 조직의 안정만 쫓기 보다 작은 벤처에서 부딪치며 배우는 것도 좋은 길입니다. 자신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도전하십시오.” 
정리=김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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